사람냄새나는 이야기

캣우먼의 well-aging ‘곱게’ 나이 든다는 것

좋은사람 좋은생각 2011. 4. 8. 14:34

캣우먼의 well-aging ‘곱게’ 나이 든다는 것

우먼센스 | 입력 2011.04.08 08:55


말이 좋아 '웰 에이징'이지 '나 늙어가는 것 개탄하는 글'을 연재한다고 너스레를 떠니 한 친구가 말했다.

"넌 그게 걱정이니? 난 나 늙는 것보다 우리 부모님들 늙어가시는 게 더 고민되던데."

듣고 보니 일리 있는 얘기였다.

최근에 팔순 된 시어머니가 병원 신세를 지셨다. 그전부터 식욕 부진과 요실금을 앓고 있어 불편해하셨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넘어지셔서 허리가 부러진 것이다. 근 한 달을 병원에서 꼼짝없이 누워계시는 사이, 외며느리인 난 마음이 너무 무거웠다. 어린아이를 키우며 일을 한다는 핑계로 간병 의무에선 벗어날 수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입원이 아니라 퇴원 후였다. 시아버지가 정정하시고 근처에 사는 시누이가 매일같이 들른다 해도 가사를 직접 돌보던 분이 누워 계시니 말이다. 이번에도 난 반찬배달 전문 사이트에서 반찬을 배달시키는 방법으로 며느리의 도리를 했다. 물론 내가 직접 가서 반찬을 만들지 않고 돈으로 다 때우는 셈이니 죄책감이 들었다. 다행히 요즘 시어머니는 기대 이상으로 컨디션이 호전되셨다. 하지만 이번에는 쉽게 넘어갔지만 향후 이보다 더한 일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왔다. 무서웠다. 상태가 심각하면 그분들에게도 고통이지만 우리 자식들한테도 고통과 분란의 씨앗이 될까 봐.

한 친한 언니는 최근까지 홀로 된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시아버지는 성격도 괴팍하고 집안일에 도움도 안 주고 반찬 투정도 했다. 급기야는 몸이 안 좋아져 방에서 변을 보는 일도 발생했다. 제아무리 사랑하는 남자의 아버지라 한들, 제아무리 천사표라 한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힘든 일들이 앞으로 더 자주, 더 심하게 일어나리란 두려움에 떠는 그녀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공허한 위로뿐. 아마 그녀는 종종 '천사표' 따위 저 멀리 던져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시아버지는 갑자기 돌아가시고 말았고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있던 그 언니는 준비 없는 이별에 넋을 잃고 말았다.

'웰 에이징'은 어찌어찌 능동적으로 잘 관리해본다 해도 '웰 다잉(well-dying)'은 사람 마음대로 될 수가 없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지내다가 어느 봄날 목련꽃이 지듯이 편안하게 저세상으로 떠나면 좋겠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죽음을 포함해 그 누구도 보장할 수가 없다.

불가사의한 점은 '부모'라는 존재는 나이가 들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릴 때, 부모 품에서 지내다가 어른이 되면 어떻게든 부모 품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집에서 나오려고 하고, 부모님 찾아뵙는 것을 뒤로 미루고 안부전화는커녕, 전화가 오면 잘 받지도 않는다. 즉 부모님의 존재를 최대한 잊고 산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부모님도 고령이 되면 다시 부모님의 존재감이 되살아난다. 그것도 더 짙게. 우리가 보살펴드려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도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이 우리 삶의 '큰 기둥'이었음을 뒤늦게나마 깨닫기 때문이다. 거추장스러운 부모님이 안 계시면 자칫 홀가분할 것 같고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 내키는 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은 언뜻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아무도 나를 통제해주지 않는 무정부적 상황은 생각해보면, 꽤 무서울 것도 같다.

가끔 훗날 어떤 일이, 어떤 책임이 내 앞에 떡 벌어질까 겁나지만, 그리고 내가 그에 대해 사전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그저 무력감만 느끼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부모님의 존재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다. 이렇게 다들 조금씩 철이 들어가는 것일까? 이것도 '웰 에이징'이겠지?

 

 

기획: 심효진 기자 | 글: 임경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