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삶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2019년2월호 리아호나

좋은사람 좋은생각 2022. 12. 14. 10:31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자녀에게 진리를 주셨으며,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서로 공유할 만한 진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니파이후서 29:7~13 참조) 교회에서 우리는 “충만한 복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의미는 아니며, 우리만 정답을 갖고 있다는 의미도 아니다.

너희는 민족이 하나 이상 있음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주 너희 하나님인 내가 만인을 창조하였음과 내가 바다의 섬들 위에 있는 자들을 기억한다는 것과 내가 위로 하늘에서와 아래로 땅에서 다스리며, 나의 말을 사람의 자녀들에게, 참으로 땅의 모든 민족들 위에 가져다 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니후38:7)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 장로님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름답게 표현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날 살아 계시며, 모든 나라마다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많은 빛과 그들을 가르칠 수 있는 사자를 보내도록 자비를 베푸십니다.(앨마서 29:8 참조)” 닐에이 맥스웰, “오 거룩하신 구속주여”, 성도의 벗, 1982년 4월호, 12쪽.
이는 보라 주께서는 그들 자신의 나라와 방언을 가진 모든 민족에게 그의 말씀을, 참으로 그들이 갖는 것이 합당하다고 그가 여기시는 모든 것을, 지혜로써 가르칠 것을 허락하시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주께서 의롭고 참된 바를 좇아, 지혜로써 권고하심을 아느니라.(앨29:8)

십이사도 정원회의 쿠엔틴 엘 쿡 장로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전반적으로 정중한 의사소통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 또한 문제입니다. 선택의지의 영원한 원리는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 선택들도 존중할 것을 요구합니다.”쿠엔틴 엘 쿡, “영원한 일상”, 리아호나, 2017년 11월호, 53쪽.


“노여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서로 대적하게 하는 이것은 [그]의 교리가 아니요.” 우리는 이러한 일을 지양해야 한다. (제3니파이 11:29~30 참조)

29 이는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다투는 정신을 가진 자는 내게 속한 자가 아니요 분쟁의 아비인 악마에게 속한 자임이라,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서로 노여움으로 다투게 하는도다.
30 보라, 노여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충동하여 서로 대적하게 하는 이것은 나의 교리가 아니요, 그러한 일을 없이 하는 이것이 나의 교리이니라.

어떤 사람의 말을 진심을 다해 경청하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이해하려 노력할 때,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바꾸려고 애쓰지 않고 그저 그 사람의 말을 듣기만 할 때,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되는지 알게 된다면 정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의 견해나 의견에 더 큰 연민과 존경심을 발휘하거나, 적어도 그 때문에 그들을 증오하지 않을 수는 있다. 우리의 이해력을 넓혀 줄 새로운 진리를 배우게 될 수도 있는 일이다. 아니면 대화 내내 똑같은 진리를 공유했음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핵심은, 겸손하게 누구에게서든 배울 수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우리는 선교사들이 구도자와 토론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선교사들은 구도자의 의견을 절대로 틀리다거나 잘못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해주려 힘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오히려 회원으로서 토론에 참여했었을 때 나의 목소리가 그들의 말하고 싶은 생각들을 말하지 못하게 하는 않았는지 자신을 돌이켜 봅니다.(my)

“모르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무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는 문구이다.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을 붙여 놓았는데, 부디 효과가 있기를 바란다.

이 문구는 또한 내가 무지한 상태에 머물지 않도록 나를 일깨워 준다. 이는 진리가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나타나더라도 진리를 배우고 듣고 추구할 책임이 내게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귀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더 많은 것을 허락해 주신다.

내가 모르는 것들이 많은데 내가 알고있는 작은 지식으로 마치 다 알고있는 듯 생활하고 다 아는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는 모르는 것도 많고 할 수 없는 것도 많은데도 ......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모르는 것을 배우고 나의 지혜를 넓히고 싶다는 의지인 것입니다. 누군가에게서 새로운 것을 보고 듣는다는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와 다른 것에 대해서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나의 생각과 다른 행동을 하는 아이를 보면 그냥 지나치려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나의.생각을 주입시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합니다. 요즈음은 이런 사람을 꼰데라 하더라고요.

제가 가장 좋아하고 지향하는 가르침은 신앙개조 13조입니다. 13 우리는 정직, 진실, 순결, 인자, 유덕, 그리고 만인에게의 선행을 믿는다. 진실로 우리는 바울의 훈계를 따른다 할 수 있으니—우리는 모든 것을 믿으며, 우리는 모든 것을 바라며,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견디어 왔으니,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기를 바란다. 무엇이든지 유덕하고 사랑할 만하거나 혹 듣기 좋거나 혹 칭찬할 만한 일이 있으면 우리는 이것들을 구하여 마지않는다.

수학문제에는 정답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에는 내 생각만이 정답이라고 하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서로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생각이 옳거나 틀릴 수도 있기에 조심스럽습니다.
.

'신앙=삶' 카테고리의 다른 글

노자의 인간관계 5계명  (1) 2023.11.28
성전방문  (0) 2023.03.22
강요와 권유  (0) 2022.12.14
진실은 밝혀진다  (0) 2020.03.25
변화를 멈추지마라  (0) 2020.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