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의 지혜

무거운 소유 대신 깃털 같은 렌털인생을 통째로 빌려드립니다

좋은사람 좋은생각 2018. 7. 3. 09:10

무거운 소유 대신 깃털 같은 렌털인생을 통째로 빌려드립니다
인생을 통째로 빌려드립니다
“이번 주말은 통째로 빌려서 살았네.” 친구 결혼식을 위해 서울에 왔다 짧은 여행을 즐긴 부부가 말한다. 부부는 서울역에 도착하자마자 따릉이 자전거를 빌려 경복궁을 찾았다. 한복을 빌려 입고 고궁 주변을 돌아다녔는데, 고화질 액션 카메라를 대여한 덕분에 인생샷을 건졌다. 결혼식 복장은 지인이 소개해준 패션 대여점을 이용했다. 평소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만 하던 명품 가방과 구두도 빌렸다. 결혼식장을 오가는 동선이 복잡했는데, 시간제 카셰어링으로 해결했다. 숙소는 에어비앤비를 통해 가정집 방 하나를 빌려 썼다. 세련된 가구, 깨끗한 침구와 공기청정기 덕분에 아주 쾌적한 시간을 보냈는데, 집주인은 그 모든 걸 대여해서 쓴다고 했다. 둘은 돌아가는 KTX 안에서 말했다. “아예 이런 식으로 살아보는 건 어떨까?”


무거운 소유 대신 깃털 같은 렌털

가볍고도 뽀송뽀송한 라이프스타일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물론 ‘사지 않고 빌려 쓴다’라 는 경제 행위가 새로운 발명품은 아니다. 인간이 문자와 숫자를 발명하고 가장 먼저 한 일 중 하나 가 대출 장부 만들기였으므로. 그런데 그동안은 주로 무겁고 비싼 것을 빌려왔다. 부동산이 대표적이다. 주택은 자가 비율이 최근에야 겨우 60%를 넘었고 사무실, 가게 등은 임대가 훨씬 일반적이다.
하지만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주택 구입 자체를 포기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이사가 번거로운 건 사실이지만, 이곳저곳 여러 동네와 환경을 경험하는 재미도 있다고 한다. 사무실도 ‘코워킹 스페이스’ 같은 곳을 필요한 때만 빌린다.

그동안 렌털 시장을 주도해온 제품은 자동차,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이다. 이것들은 고가의 제품이고,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부품을 교체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자전거, 장난감, 가구, 패션, 예술품 등 렌털 시장이 다루는 품목이 놀랍도록 확장되고 있다. “뭐야, 이런 것도 빌려 쓸 수 있어?” “뭐라고?! 이런 방법으로 빌려도 돼?” 탄성이 절로 나온다. KT경제경영연구소에 따르면 국내 렌털 시장이 2020년에는 40조원 수준에 이를 것이라 한다. 세계시장에서도 렌털은 핫이슈다. 지난 3월 중국의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는 미국의 의류 대여업체 렌트 더 런웨이(Rent the Runway)에 2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렌털의 대공세,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가성비 렌털’이다.

경제 성장기엔 누구든 돈을 모아 집을 사고, 그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채우고 싶어 한다. 하지만 끝나지 않는 불황의 한파, 유례 없는 취업난에 시달리며 사람들은 소유에 대한 욕망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뭔가 필요해서 살까 하더라도, 그걸 보관할 장소가 없어 고민한다. 1인 가구의 증가, 이사를 자주 해야 하는 환경 등도 이러한 상황을 강화한다. 최근 가정에서 책꽂이가 사라지고 있다. 대신 도서관을 이용하거나, e-book을 대여하거나, 팟캐스트를 듣거나, 동영상 강의를 본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순식간에 쓸모없어지는 유모차, 장난감, 학습 교재 등 도 가능한 한 빌려 쓴다. 합리적 소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인 것이다.


두 번째는 ‘욜로 렌털’이다.

멋진 자동차, 가구, 시계, 구두… 언젠가는 장만하고 싶지만, 그 언젠가가 과연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과거에는 포기하고 말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인생은 한 번뿐, 지금 빌려서 쓰며 즐기자! 그래서 짧은 휴가 동안 자동차를 빌리고 멋진 패션용품으로 꾸미고 럭셔리한 인생을 만끽해본다. 그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 사진을 SNS에 올리면 자존감도 살아나고 삶의 활력도 생긴다. 욜로 렌털의 장점은 지겨우면 교체할 수 있다는 거다. 최신 스마트폰을 쓰고 싶지만 매번 고장 나지도 않은 것을 새로 살 수는 없는 경우 렌털을 이용해 손에 쥐고, 싫증이 나면 돌려준다. 어찌 보면 변 덕스럽고 사치스러운 취향일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물건이 아니라 ‘경험’을 사는 행위라고 여긴다.최근에는 미술 작품과 빈티지 가구를 주기적으로 교체해주는 렌털 서비스도 생겨났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취향과 안목을 넓혀갈 기회를 얻는다.


세 번째는 ‘스마트 렌털’이다.

스마트폰, 사물인터넷, GPS 등 새로운 기술이 낡은 렌털의 영역을 넘보고 있다. 서울시의 따릉이 자전거는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쉽게 빌리고 반납할 수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런데 지정된 대여소를 찾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컸다. 그러자 S 바이크, 쿠키 바이크 등이 사물인터넷을 활용해 아무 곳에나 자전거를 세워두고 반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에어비앤비가 누구든 안 쓰는 방을 숙소로 제공할 수 있게 했듯이, 개인들이 주차 공간을 시간 단위로 대여하는 시스템도 조만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실리 콘밸리에서는 P2P 카풀 서비스 리프트(Lyft), 유휴 공구와 장비를 대여하는 질록(Zilok) 등 렌털 관련 아이템이 꾸준히 화제를 만들어내고 있다.


“소유는 종말에 이르렀다.

무소유를 이야기하는 스님의 말이 아니다. 저명한 사회학자 제러미 리프킨이 21세기의 개막과 함께 우리에게 던진 화두다. 2012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리스, 렌털, 타임셰어(time-share) 등의 비즈니스 모델이 호황을 누릴 것이다. 2050년이 되면 사람들이 지구의 모든 자원을 ‘공공재’라고 인식할 것이다.”
우리 시대 소유의 반대말은 ‘접속’이다. 우리는 이제 음악 CD, 영화 DVD를 사서 보관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다운로드해 저장할 필요가 없다. 언제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접속만 하면 바로 보고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의 또 다른 반대말은 ‘사용’이다. 누군가가 집안 창고에 처박아둔 물건은 아무 가치가 없다. 누군가 그걸 빌려 먼지를 털어 내고 사용해야만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는 깨닫고 있다. 그래서 소유의 진정한 반대말은 ‘공유’다.
서울 후암동에는 ‘후암 서재’, ‘후암 주방’이라는 색다른 공간이 있다. 누구든 예약만 하면 책을 읽고 작업할 멋진 서재와 요리를 만들어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근사한 주방을 빌려 쓸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은 이 공간을 사용하는 또 다른 사람들과 묘한 공감대를 얻는다. 그래서 다음 사용자를 위해 공간을 아끼고 자발적으로 관리한다. 어떻게 하면 이 공간을 더 효과적으로 쓸 수 있는지 노하우를 나누기도 한다. 렌털은 공동체와 친구를 만들어가는 수단이 되고 있다.

공유의 정신을 통해 렌털은 새로운 삶의 기초가 된다. 내가 빌려 쓰는 물건이나 공간을 함부로 다뤄서는 곤란하다. 말썽이 나면 내가 책임져야 해서가 아니다. 내 뒤를 이어 친구, 가족, 지인이 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빌린 물건은 약간 부서지거나 고장 났다고 해서 그냥 버리지 않는다. 전문가에게 맡겨 제 기능을 되찾거나 좀 더 멋지게 변신할 수도 있다.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는지 구에도 기쁜 소식이다. 사서 쓰는 인간과 빌려 쓰는 인간, 어느 쪽이 더 환경 친화적일까?

글 이명석 (문화비평가)